나고야 성의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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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성의 안내

정문(소실, 재건)

Main Gate (reconstructed)

메이지 43년(1910년) 구 에도성내의 연못어문을 이축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소실되었고 쇼와 34년(1959년) 천수각과 함께 재건되었습니다.

비자나무

Main Gate (reconstructed)

수령 600년 이상으로 전해지는 천연기념물 “비자나무”. 번조 요시나오(義直)가 오사카로 출전할 때 이 나무의 과실을 반찬으로 삼은 적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서남 스미야구라(西南隅櫓, 중요문화재)

Main Gate (reconstructed)

히쓰지사루야구라(未申櫓)라고도 불리웠고 지붕 2층, 내부 3층으로 이루어진 망루입니다. 서쪽과 남쪽의 양면에는 군사용 “이시오또시(石落, 적의 침범시 적을 물리치기 위한 수단으로 돌을 떨어뜨렸음)”가 만들어져 있었으나 노비(濃尾) 대지진으로 돌담과 함께 붕괴되었습니다. 궁내성(宮內省)이 수리 복구하여 기와 등에는 국화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모테니노문(表二之門, 중요문화재)

Main Gate (reconstructed)

옛날에는 미나미니노문이라고 불리웠으며 문설주, 관목(冠木)은 단단한 목재로 두껍고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영병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철포의 사격 구멍이 뚤러져 있어 요소로서의 견고함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니노마루 다정(茶亭)

Main Gate (reconstructed)

니노마루 다정은 현대 양식속에 고전미를 살린 건물로 소재도 기소(木曾)의 노송나무를 사용하어 점차(点茶)를 달이기 위한 다원 등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명승 니노마루 정원

Main Gate (reconstructed)

겐나(元和) 년간(1615-1623년), 니노마루어전의 건축과 함께 동 어전의 북쪽에 성당(금성옥진간(金聲玉振閣))을 중심으로 건축되었지만 교호(享保, 1716-1736년) 이후 여러번 개수되어 고산수회유식(枯山水回遊式) 정원으로 개조되었습니다.

니노마루(二之丸) 동정원

Main Gate (reconstructed)

메이지 초기에 병영을 건축하기 위해 니노마루 정원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습니다. 나고야시 호사문고(蓬左文庫) 소장의 “오시로 오니와 에즈(御城御庭絵図, 성과 정원의 그림)”에 의거한 발굴조사에서 밝혀진 북지(北池), 남지(南池), 차석(茶席) “상걸(霜傑)”의 옛 건축자국인 암거(暗渠)를 중심으로 정비하였으며, 쇼와 53년(1978년) 4월 니노마루 동정원으로 개원하였습니다. 동정원의 면적은 약 14,000㎡이고 부근에는 모란, 작약 등 화원이 있습니다.

기요마사이시(淸正石)

Main Gate (reconstructed)

천수각의 돌담 구축을 명령받은 가토 기요마사는, 거석 운반시 자신은 물론, 민중의 노소를 묻지 않고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운반하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 돌담의 시공책임자는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로 전해지고 있어 이 이야기는 단지 설화에 불구한다고 합니다.

혼마루어전(本丸御殿, 소실)

Main Gate (reconstructed)

천수각의 남쪽 혼마루 거의 중앙에 위치한 건축물로, 당초에는 초대 오와리 번주인 도쿠가와 요시나오의 거주와 주요 관청으로 사용되었으나, 그 후 장군이 상경할 때 숙관(宿館)으로 되었습니다. 니조성(二條城) 니노마루어전과 나란히 서원 건축의 쌍벽을 이루었으나, 아쉽게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소실되었습니다. (현재, 복원을 위한 기부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천수각(天守閣)

Main Gate (reconstructed)

금색 찬란한 긴샤치를 용마루에 장식하고 나고야의 상징으로 사랑을 받아 온 나고야 성이 소실된 후, 10여년 만인 1959년 10월에 재건되었습니다.

노기(乃木) 창고

Main Gate (reconstructed)

나고야 성내 오후케마루(御深井櫓)에 남겨진 벽돌을 이용해 건축한 회반죽칠한 근대 건축물입니다. 내부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메이지 5년(1872년), 도쿄 진대(鎭臺, 옛날 지방을 수비한 군대) 제3분영(그 후의 나고야 진대)을 나고야 성내에 설치하여 메이지 7년(1874년)에 산노마루 전 지역을 구 육군성의 이축 관리하에 탄약 창고로 건축되었습니다. 건축연대는 이축 관리 직후의 메이지 7년(1874년), 9년(1876년), 13년(1881년) 등의 설이 있지만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습니다.
규모는 동서 12.28m, 남북 8.6m, 높이 7.68m, 면적 89.25㎡(부속의 원 화약창고 13.12㎡)입니다. 입구 상부와 바닥은 궁형구조일 뿐만 아니라, 건축물의 모퉁이는 회반죽칠한 돌담형식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또한 입구의 문은 동판(銅板)이 펴져 있습니다. 이름은 육군 소좌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로 유래되었다고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br제2차 세계대전 중 1945년 5월 14일 나고야 공습에 의해 천수각, 혼마루어전 등은 소실되었지만, 이 창고만 무사하였고 공습이 시작되기 전에 피난시킨 장벽화의 일부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서북 스미야구라(隅櫓, 망루, 중요문화재)

Main Gate (reconstructed)

이누이야구라(戌亥櫓) 또는 기요스야구라(淸須櫓)라고도 불리웠고 다른 건물의 고재를 이용해서 건축되었습니다. 외부의 북면, 서면에 천조파풍(千鳥破風)을 만들었고 “낙협간(落狹間)”을 장비했습니다.


동영상:나고야 성의 사적(3분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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